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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과학기술과 시장 주체의 네트워크가 국가로 확대
 작성자 : 강경숙
Date : 2006-09-18 11:30  |  Hit : 22,423  
2005년 12월 20일 참세상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id=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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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시장 주체의 네트워크가 국가로 확대
[황우석사태진단](5) - 황우석 사태와 과학기술

이상동(시민참여연구센터) / 2005년12월20일 14시21분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은 지난 1월 줄기세포 곰팡이 감염사실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 박기영 보좌관은 황우석 교수팀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기에 그냥 지나쳤다고 말했다. 그게 얼마 짜린데... 김병준 정책실장은 MBC측 내용을 전달받은 뒤 황우석 교수 측에 협력을 촉구하고서도 역시 보고하지 않았다. 그 사이 노무현 대통령은 두 번이나 관련 발언을 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되도 않는 정보를 토대로 마구 떠든 셈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MBC PD수첩 광고중단 문제를 언급하면서 "나도 MBC가 짜증스럽다"는 글을 올렸고, 지난 5일 '황우석 교수 논란의 중단'을 요구하며 "정부는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가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 알고 말했는지, 모르고 말했는지 알 길은 없다. 박기영도, 김병준도 발을 빼는 모양새인데 대통령 노무현으로서야...


2003년 12월 황우석 교수 연구실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후 이처럼 가슴 뻐근하게 기쁜 날은 처음"이라고 말했고, 2004년 6월에는 황우석 교수팀 연구원 11명에게 과학기술최고훈장을 수여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박기영과 김병준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문제는 사태 본질에 비하면 세 발의 피에 불과하다. 분명한 건 참여정부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와 과기,복지 등 관련 부처 핵심들이 과학기술과 의료의 '산업화, 상업화'를 추동해 왔다는 점이다. 원죄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상동 시민참여연구센터 사무국장은 이러한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현 정권의 모토가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이 생산력 증대와 자본 집중의 중요한 지렛대가 된 것에서 기인하고 그것을 조직하고 영향 받는 단위가 여러 매커니즘들과 시장 주체들이 상호 복잡한 네트워크로 얽힌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과학기술에 있어 국가주의가 위로부터의 과학대중화라고 지적한 이상동 사무국장은 "국가시책에 따라 오라는 식의 이런 접근이 '신비화된 과학기술의 영웅' 황우석과 맞닿아" 있고, "여기서 정치마케팅과 상업언론마케팅은 '영웅'의 이미지를 자신의 마케팅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위로부터의 과학대중화를 확대 강화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황우석 교수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소위 의료선진화 추진의 여론 형성에 활용하는데, 이는 "황우석 교수팀과 관련된 각종 병원, 연구시설, 농장 등이 경제특구로 지정되거나 지정될 예정인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라고 짚는다.


이상동 사무국장은 과학계의 건강성을 살리고 수직적인 연구실 내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자리 잡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과학자진실성위원회' 설치를 적극 제안한다. 과학자진실성위원회는 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받는 가운데 부정행위 조사, 내부 고발자 보호, 부당하게 연구 업적을 가로채는 일 감시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한국 대학의 연구실 내의 수직적 관계 문제를 짚었다. 이상동 사무국장은 "대학원생들의 연구노동은 노동으로 인정치 않고 학업이나 수련의 과정으로 치부"된다고 지적하고 "불평등한 수직관계 속에서 '스승'의 비리와 부정직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불가능함은 물론이고 '은밀한 요구'에 저항할 수조차 없게 만들기 십상"이라며 과학자 사회의 규범이 제대로 확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자진실성위원회 같은 기구가 존재하고 제도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역할만 했어도 아마 난자 매매, 연구 윤리, 논문 조작과 같은 황당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상동 사무국장의 생각이다.


짧은 글이지만 한 과학활동가가 황우석 사태를 보며 느낀 과학기술에 대한 고민이 압축된 글이다. '황우석 사건으로부터 바라 본 과학기술계의 여러 문제들'이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글을 '황우석 사태와 과학기술'로 바꿔 등록한다. 황우석 사태 진단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 [편집자 주]



들어가며


한마디로 추악하다는 것 말고는 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이 완전한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벌이는 쇼인가? 살풀이인가? ‘세계 최초’의 환자맞춤형 배아복제 줄기세포 수립 기술의 ‘권위자’이며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영웅’은 마지막까지 진흙탕에서 뒹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직도 ‘진실 공방의 오리무중 상황’이라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일부 언론들이 있긴 하지만, 이미 논문조작은 사실로 밝혀졌고 과학자 황우석의 생명은 다했다. 필자는 솔직히 정부와 언론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제외하면 그 외의 진흙탕 싸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느 네티즌의 말처럼 ‘황우석의 폭탄 돌리기 게임’에 가담할 정신적 여유가 내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어떤 교훈과 과제를 남긴 것인지 정리하는 데에도 머리가 아프다.


이번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은 ‘통제되지 않는 한국사회의 과학기술계’가 갖고 있는 갖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응축되어 폭발한 사건이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정신을 쏙 빼는 스펙터클 영화를 한 달 동안 보고 나서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글에서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 과학기술계의 현황과 관련된 문제 몇 가지만 제시하기로 한다.


과학기술에 스며든 국가주의


먼저, 과학기술에 스며든 국가주의의 냄새가 난다. 한국에서 70년대 이래 과학기술은 경제개발의 도구로써 기능해 오다가 21세기에 즈음하여 하나의 사회문화적 코드로 그 지위가 상승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이 생산력 증대와 자본 집중의 중요한 지렛대가 된 것에서 기인하고 그것을 조직하고 영향 받는 단위가 여러 매커니즘들과 시장 주체들이 상호 복잡한 네트워크로 얽힌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된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소위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현 정권의 모토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읽힌다. 과학기술이 생활 곳곳에 더욱 깊숙이 침습해 가는 변화된 양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70년대 이래 과학기술과 대중과의 관계를 계몽적 시각에만 입각한 과학대중화로써 접근해 왔다.


국가주의라는 혐의는 과학기술이 노동자 민중에게 미치는 다양한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한다거나 전문화된 지식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강화하는 과학대중화 방식이 아니라 국가의 목표를 보다 용이하게 전달하고 그것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위로부터의 과학대중화 방식을 정부가 취하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기술은 무조건 발전해야 하고 그것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므로 국가시책에 따라 오라는 식의 이런 접근이 ‘신비화된 과학기술의 영웅’ 황우석과 맞닿아 있다. 대중이 아무런 의심이나 문제제기 없이 쫓아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영웅’과 ‘신비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치마케팅과 상업언론마케팅은 ‘영웅’의 이미지를 자신의 마케팅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동시에 ‘위로부터의 과학대중화’를 더욱 강화,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의료시장 개방의 지렛대, 생명공학


둘째로 과학기술이 어떻게 산업과 연계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하고 실증적인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필자의 고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 이번 황우석 사건에서 드러난 생명공학(BT)과 의료산업의 동맹 양태에만 국한시켜 본다면 그들의 인적 네트워크에서 약간의 자락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하는데 결론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체적으로 황우석이라는 과학권력은 줄기세포의 경제적 효과를 부풀림으로써 대중들에게 의료산업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심어줌과 동시에 국가의 자원이 집중되도록 하고 산업계는 황우석 교수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소위 ‘의료선진화’ - 실제로는 의료, 병원 개방 - 추진의 여론 형성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분석이다. 덧붙여 황우석 교수팀과 관련된 각종 병원, 연구시설, 농장 등이 경제특구로 지정되거나 지정될 예정인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과학기술 쪽에서만 접근해 보자면, 문제는 경제적 효과가 대단히 불투명하고 아직 상업화하기에도 성숙도가 대단히 떨어지는 기술을 ‘시장개방’을 위한 여론 형성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 보자. 예전에 여러 사립학교 재단들이 지역의 인재를 위한 ‘고귀한’ 교육사업을 명분으로 정부의 특혜를 받고서는 실제로는 땅투기를 하던 행태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런 식의 행태는 신자유주의 시장개방을 위해서는 효과적이겠지만, 해당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풍토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


과학기술자와 연구기관들은 기초를 다지고 저변을 확대하는 것을 소홀히 하고 ‘세계 최초’와 ‘첨단’을 쫓거나 경제성과 실적을 부풀리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 사회의 규범’을 훼손시키는 기업가적 대학과 수직적 연구실 관계


마지막으로 과학기술계 내의 정직성과 불편부당성이라는 규범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짚어 보자. 과학계 특히 대학은 1980년대 이후 소위 ‘산학협동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강화됨에 따라 산업경쟁력 확보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이것을 어떤 학자들은 “제2차 대학혁명”이라고도 부르는데, 과학지식이 본격적으로 상업화 사유화로 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과학지식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시장적 가치가 연구기관들을 지배하면서 개별 과학자는 자신의 프로젝트 지원자의 이익에 반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원자가 원하는 결과를 원하는 시일 안에 수행해야만 한다.


연구자는 그렇지 않을 경우 거대 과학기술시스템 체제 내에서 경쟁에 뒤처지게 된다. 이미 ‘과학 진실성’을 개별 과학자의 양식에 맡기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한국 대학에서는 연구실 내의 수직적 관계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대학원생들의 연구노동은 노동으로 인정치 않고 학업이나 수련의 과정으로 치부되고 있다. ‘스승’은 ‘제자’에게 적절한 신분보장과 정당한 임금보상을 제공하는 대신에 미래를 볼모로 한 수직관계를 강요한다. 불평등한 수직관계 속에서 ‘스승’의 비리와 부정직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불가능함은 물론이고 ‘은밀한 요구’에 저항할 수 조차 없게 만들기 십상이다.


제도적 장치 : ‘과학자진실성위원회’의 설치를 위해


이제 연구 과정의 왜곡을 개인의 문제로 남길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거짓말쟁이 교수‘가 없기를 바라거나, ’정직한 학생‘을 바라기만 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사건이 과학계의 건강성을 살리고 수직적인 연구실 내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자리 잡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 ‘과학자진실성위원회’와 관련 정부 기구 설치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진실성위원회 (Committee on Scientists Integrity)’ - 이 명칭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할 듯 하다. ‘과학건전성위원회’ 혹은 ‘과학자윤리규범위원회’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 는 과학적 부정행위가 제보되었을 때 그것을 조사해야 할 일차적인 의무가 있는 각 연구기관 내에 설치되는 기구이다.


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받는 이 위원회는 부정행위를 조사할 뿐만 아니라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고 나아가 부당하게 연구 업적을 가로채는 일을 감시하기도 한다. 소장학자들과 연구실 내 약자들이 과학진실성위원회 설치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차원의 기구로는 미국 연방정부 산하의 ‘연구정직국(Office of Research Institute), 독일 연구재단(DFG, German Research Foundation) 산하의 과학적 부정행위 조사위원회(Committee of Inquiry on Allegations of Scientific Misconduct) 그리고 덴마크의 과학적 부정직위원회(Committees on Scientific Dishonesty) 등의 외국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들 기구들은 모두 정부와 학계로부터 독립적이다. 개별 연구기관들의 부정행위 조사를 지원하고 사례를 분석하며, 부정행위에 대한 정책과 규정들을 만드는 일을 수행하기도 한다.


나가며


이번 사건은 ‘조작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한 상식 차원에서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상식이 상식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와 구조들, 그 가운데에서 한국사회 과학기술의 왜곡과 관련된 작은 일단이 보였을 뿐이다.


이제 겨우 연구 수행 과정의 차원에서 ‘과학기술의 민주적 통제와 감시’의 필요성이 드러났을 뿐이다. 앞으로 연구주제, 선정과 기획 그리고 활용의 전 과정에 ‘민주적 통제와 감시’의 시선을 던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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