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터 활동 때문에 여러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을 만나다 보면, 친한 선후배나 친구들도 간혹 만나게 됩니다. 그 중 몇몇은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 자료들은 모두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걸 모아서 정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거 조사연구해서 결과를 얻어도 어디 학회지에 발표도 못한다. 논문에 대한 계량 목표나 연구 프로젝트에 치이는 연구자들이 그런 연구에 참여하려 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요새 학생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아느냐? 돈이 되지도 않고 힘들기만 한 과학상점 조사연구에 누가 자원을 하겠느냐?”

정말 그렇습니다. 참터에서 하는 조사연구활동의 대부분은 전문성의 측면에서 석사 논문 수준 이거나 그 이하입니다. 유명 학술지에 게제할 수 있을 정도의 조사연구는 드문 편입니다. 많은 보고서들이 어느 연구기관이나 의료기관에서 수행한 1차 결과들을 해석한 후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나 관점에 맞게 따로 따로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연결하고 종합하여 시민들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왜 그 내용에 대해서 그리고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 걸까요? 오히려 그 조사연구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결과가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지를 질문해야하지 않을까요?

전문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어떤 목적을 가지는 지 그리고 어떤 효과, 필요성을 갖는 지 묻기를 너무나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하는 연구가 갖는 의미에 대한 진실을 대면하기 보다는 제도와 조직 뒤에서 핑계를 대고 숨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학생들은 과학과 기술이 무엇을 위한 것인 지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지를 묻지 않습니다. 공동의 선과 목표, 선한 의지와 협력을 통한 연구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이나 명리에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과학과 기술은 도구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그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자신의 선택이나 행위의 의미를 알 필요도 없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자들은 연구결과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파급 효과를 가지는 지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할 지 자신의 역할을 못찾고 책임을 방기하거나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이 변하지 않고 계속된다면 인간과 환경이라는 생태적 기초에서 출발한 과학적 탐구 행위는 그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목표와 과학기술자의 탐구행위가 갖는 의미를 찾아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국가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과학기술자 집단 자체의 주체적인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이 처한 도구적 상황을 받아들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주체로서 스스로가, 어떤 과학기술이 필요하고 어떤 과학기술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평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공적인 과학기술, 시민을 위한 과학기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며,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부작용과 사회적?생태적 파급 효과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과학상점의 조사연구 활동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학기술자들의 가장 적절하고 바람직한 실천입니다. 과학상점의 지역기반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사회의 일반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조사연구를 수행하며 서로간의 관점을 이해하고 사회와 당면한 문제를 이해하며 상호교류하고 교육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보유한 과학기술 지식과 전문성이 갖는 가치와 영향력에 대해서 깨닫고 자긍심을 가지며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여 연구자들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 시간 관리, 자신의 일을 조직하는 기술, 협상 기술 등 일반적인 연구 활동에서는 사라져서 배우기 힘든 사회적 기술들을 배울 수 있고, 지역의 다양한 부분에 종사는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참터의 조사연구 활동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를 접하고 조사연구를 하면서 몸으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체화하게 됩니다.

참터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과학과 기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 본연의 근원적 행위를 사랑합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탐구 행위, 그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상호교육과 협동, 탐구자가 스스로의 행위의 의미를 찾게 되는 회복의 과정이 그것입니다. 참터는 과학과 기술의 근본이 되는 탐구 행위를 복원하고자 합니다. 이 탐구 행위는 연구자가 속한 생태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관계를 숙고하면서 문제해결로 나아가게 합니다. 참터에는 이웃을 위한 기술을 만들려는 마음과 자연과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 데이터로서 흔적을 남기고 싶은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참터의 조사연구 활동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완전히 포획되어 버린 과학과 기술을, 서로 알고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가진 과학과 기술로 만들고자 하는 작은 실천이며, 과학적 탐구 행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복원하기 위해 이공계 학생과 과학기술자에게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극하는 하나의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