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명단에 이름만 올려놓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전혀 활동을 하지 않다가 2006년 가을부터 나름대로 작은 활동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문제점과 참터 활동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회원들과 공유함으로써, 참터가 더 나은 방향을 나아가기 위한 ‘토론거리’를 제시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활동은 2006년 2학기 중 진행된 충남대 학생들의 봉사학점 프로그램 중 ‘아토피’ 관련 자료조사 업무의 지도와 3/4 공단 내 K사의 작업환경 조사 및 상담이었습니다.

○ ‘아토피’ 관련 자료 조사

이 프로그램은 ‘전문적인 내용, 논쟁들을 일반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자료로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과학기술 관련 이슈에 대한 건전한(?) 의식을 갖도록 돕는다는 부차적인 목표도 갖고 있었습니다.

학생 지도를 하면서 확인한 문제점 중, 우선 내용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 질과 양 측면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자료들이 이미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에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색 엔진이 발달하고, 보건의료 및 관련 상품의 시장이 커지면서 이들의 정보 제공역량이 커진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참터 고유의’ 지식 가공 필요성은 매우 낮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역시 관련된 문제인데, 학생들의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료원을 파악하기 어렵고,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확인하다고 해도 그 자료의 타당성에 대해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각종 웹사이트에 정리된 일반적 정보를 넘어선 전문 학술내용의 대중화 작업은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이 쌓여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최신 학술정보를 가공하여 언론사에 배포하는 전문 컨설팅 업체들이 늘어나는 현실은 이를 반영합니다. 요약하자면,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자료들은 이미 인터넷 상에 잘 정리가 되어 있고,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가공을 필요로 하는 고급 정보들은 학생들이 접근도, 정리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작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업무 만족 수준도 낮아지고, 실제 성과물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과학기술 전문 영역에 대한 참터의 자료 수집 방향을 바꿔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2차 자료의 재요약이 아니라, 정부의 관련 법령이나 시책/사업 모니터링, 학계/업계/NGO 들의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 혹은 특정 이슈에 집중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소위 ‘전문가’ 회원의 참여 방식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 학생들과의 토론/지역사회실습/프로젝트 수업 진행 경험이 상당히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들을 데리고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학생 지도의 목표와 방식에 대한 사전 교육이 불충분하고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보니, 학생들의 자원 활동을 통해 모자란 참터의 일손을 보충하는 것이 주된 목표인지, 아니면 이 과정에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주된 목표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굳이 전문가가 직접 학생들을 지도할 필요 없이 총무간사의 조정 작업을 통해 업무 할당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무리 전자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해도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책임을 방기할 수는 없는데, 이 경우에도 적절한 지침서나 명문화된 프로토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수의 관심 있는 회원들이 큰 부담을 갖지 않으면서 비교적 안정된 형태로 혼란 없이 결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3/4 공단 내 K사의 작업 환경 조사 및 상담

이 일에는 참터 회원이 아닌 전문가 1인과 함께 현장 방문을 하고 자료조사와 토의를 통해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의 내용과는 별도로, 참터 활동에 대한 두 가지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내/외부 전문가 참여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부(참터 회원) 혹은 외부의 전문가가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책임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어 활동의 방향을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를테면, 처음 K 사업장을 방문해서 노조와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는지 분명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기도 어려웠음), 외부 전문가에게도 어느 선까지 같이 작업을 하자고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면담 후 문제점과 대안 제시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것도 의무사항이 아니라 다만 전문가의 자발성에 근거해 작성된 것이며 다른 경우라면 어땠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 보고서 작성 후 어느 정도까지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연계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다가다 사업장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알게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참터에 의뢰 들어온 문제들이라는 게 대개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혹은 해당 시기의 첨예한 논쟁거리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식의 무계획한 참여는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으로 참터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점차 전문 영역도 생겨날 거라고 가정한다면, 의뢰 과제를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원칙적인 수준에서라도) 명문화시켜 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 참터 회원은 물론 의뢰를 하는 시민사회, 혹은 도움을 요청받은 외부 전문가들이 보다 분명한 이해 속에서 함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참터 - 전문가 개인 사이의 이견 존재 가능성을 지적해야겠습니다. 사실 조사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나 제안들은 참터의 공식 견해라기보다 전문가 개인들의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이번 사안의 경우 참터의 ‘공식 입장’이 아예 없었다는 게 문제이지만, 다른 경우라면 전문가 일 개인의 견해와 참터의 공식 입장이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사안 자체가 첨예한 논쟁거리일수록 참터의 ‘공식 입장’을 정하여 밝히는 것이 중요할 텐데, 문제는 이를 도출하거나 조정하는 프로세스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과학기술의 사회민주적 통제를 꿈꾸는 참터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로부터 멀어진 과학기술을 비판하면서 생겨난 참터가 또다시 몇몇 외부 연구자들의 전문성에 의존하고 자신의 입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존립의 근거를 의심케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참터의 시급한 과제들 중 하나는 참터의 집단 지성을 계발할 수 있는 회원 교육과 논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과제가 참터라는 공동체 안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어야, 우리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사회를 향해 ‘과학기술에서의 참여민주주의’라는 의제를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