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은 지난 2월 정부조직개편에서 시작되었다. 교육부와 과기부가 통합하여 출범한 교과부는 출연연과 대학의 연계·협력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생명연과 KAIST의 통합을 모범사례로 만들기를 희망했다. 정부와의 사전 조율이 있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KAIST 서남표 총장이 4월 15일에 생명연을 전격 방문하여 3가지 협력모델(일반적 협력, 공동연구협력센터 설립, 통합)을 제안했다. 서남표 총장의 제안 직후부터 통합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정부와 청와대의 입장이 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되었고,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대되었다.

생명연의 노동조합은 4월 24일에 비상총회를 갖고 통합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인위적 통폐합을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강제통합을 획책하는 것은 이율배반이고,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하며, 5공 치하에서의 KIST-KAIS의 통합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강제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과학기술계 출연연의 강제통합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강제통합 기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하였다. 생명연 뿐만 아니라 KAIST의 노동조합과 교수협의회, 그리고 대학원 총학생회가 모두 통합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조장희 가천의대 석좌교수, 홍창선 KAIST 전 총장, 신성철 KAIST 전 부총장, 백성기 Postech 총장 등 원로 과학자들도 우려한다는 견해를 속속 피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연-KAIST의 통합논란이 아직 끝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정부의 출연연 정책이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말로는 출연연과 대학의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출연연의 올바른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총론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교과부는 6월에 와서야 “출연연의 위상 정립 및 교육기관과의 협력방안”을 연구용역으로 발주하였으니, 그것이 끝나는 9월까지는 정부의 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고도 유독 생명연-KAIST 통합에 대해서는 교과부 차관이 4차례나 회의를 주재하고 독려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통합에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KAIST 서남표 총장 역시 정부의 통합 강행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참으로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연구 현장과 사전에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해 온 출연연 정책의 문제를 일깨우고 출연연의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 생명연의 강제통합 저지 투쟁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