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참터 정책모임 토론 와중에 ‘지표가 이미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왜 ‘경제변동률’이 아니라 ‘경제성장률’이라고 하는 걸까요? 아무런 동의의 과정도 허락받지 못한 채로, ‘성장’이란 것을 당연하고 바람직하고 보편타당한 가치로 여겨야 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었던가봅니다.

   이런 비교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A. 종합주가지수, 주택가격, 인구증가율, 경제성장률, 국제 교역량.
    B. 부의 편중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해수면 온도, 슈퍼태풍 발생 횟수, 자연재해 피해 규모.

   모두 이 시대에 증가일로에 있는 지표들이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오네요. A항목 지표의 증가는 바람직하고, B항목 지표의 증가는 그렇지 못한 걸까요? A와 B가 사실은 동전의 양면임을, B는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A의 그늘임을 인정한다면, 그렇게 단순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순위로 매겨지는 제로-섬의 싸움, ‘국가 경쟁력’이나 ‘학력 석차’라는 지표는 어떠한가요? 구성원들의 만족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함께 공유할 수 없는 어떤 숫자에 너무 예민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끝없는 숫자쟁취 경쟁을 지상과제로 여기고 그 속에서 우리의 존재 가치를 찾는다면,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인일가요?

   태극기에서는 음과 양의 순환을 그려놓았지만, 양이 차면 음이 되고 음이 차면 다시 양이 되는 자연스러운 순환의 섭리를 우리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나 봅니다. 플러스가 자연스러운 꼭 그만큼 마이너스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유, 음과 양의 순환이 깨어지고 전체의 균형이 깨어진 시스템 속에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음의 시간이 갖는 의미,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가다듬는 시간, 또한 지나왔던 길을 점검하고 다시금 방향을 고쳐 잡는 시간의 참된 가치를, 냉철한 돌아봄이 두려웠던 탓에 애써 부정하며 여기까지 지나쳐 왔던 것은 아닐까요?

   마이너스를 거부한 끝없는 경쟁체제 안에서, 급기야는 ‘세계화’라는 구호의 함정 속으로 ‘세계’가 통째로 빠져버린 것이 최근의 형국입니다. 그 속에서 덩달아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위기의 세계화’이구요. ‘조류독감’, ‘광우병’, ‘멜라민’ 등이 소수의 예외적 사례라고 우리들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석면 탈크’와 ‘돼지독감’이 위기감의 고삐를 다시금 단단히 틀어쥐는 게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유전자공학이 가져온 ‘녹색혁명’은 혁명이 아니라는데…. 이 시대 한국의 ‘녹색성장’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지, 그것이 과연 녹색이 맞긴 한 것인지, 과연 무엇을 그리고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근원적인 자리에서 질문들을 다시 던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다양한 이름 뒤에 덧붙여지는 ‘선진화’라는 구호 속에는 또 어떤 내용의 플러스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인지, 맑고 밝은 눈과 마음을 기울이고 또한 모아 나가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