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리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 하는 동안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일까? 나는 주저 없이 오래된 mp3 플레이어를 집었다. 노래제목도 표시되지 않는 그 플레이어는 다음곡이 무엇이 될 지 예측할 수도 없게 구성되어있다. 빠른 템포의 락앤롤이 흘러나오면 내 발걸음과 심장박동, 드럼비트는 일정한 박자를 타게 된다. 그렇게 걷다보면, 집이 좀 더 멀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바탕 놀이판이 끝나고 미들템포의 모던락이 흘러나오면 괜시리 퇴근길 옆을 흘러가는 갑천이 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루에 두 번 이상 경험하는 이러한 감정의 출렁거림은 이제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음악은 삶과 밀착되어 활동한다. 시각 예술은 공간적 제약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지만 음악은 시공간적 제약에서 쉽게 벗어났다. 특히 점점 작아지는 전자기기, 음원을 쉽게 찾고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제약은 더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달에 따른 각종 영향을 탐구할 때, 과연 우리는 음악과 그 영향에 대해 얼마나 생각할까? 기술-음악-일상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MTV없이 음악이, 그리고 텔레비전이 얼마나 사회에, 그리고 우리 일상에 큰 비중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전자악기 없이 대중음악이 지금과 같이 우리 삶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음원압축 없이 인터넷과 대중음악이 지금과 같은 양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이런 형태의 질문은 늘 우리 곁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기술과 음악과 일상은 언제나 상호작용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음악과 관련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정명훈의 발언과 같은 음악가 개인에 관한 일도 있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 국립오페라단 해체와 같이 음악과 관련한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있다. 음반시장은 이제 고사하다못해 목을 빼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몸짓을 하고 있으며, 음원과 관련해 다양한 저작권보호의 움직임이 강하게 소리를 치고 있기도 하다. 멀지않은 과거에는 인디밴드가 공중파에서 알몸소동을 벌인적도 있고, 음악프로의 MC를 맡으며 TV 바깥에서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던 가수가 MC교체를 당한데 대해 의혹의 눈길도 사라지지 않았다. 한 때 대중음악에서 큰 위상을 차지했던 한 가수는 이런저런 발언으로 인해 정치적 논쟁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되었으며, 또 어떤 밴드는 88만원 세대의 핵심적 심리를 표현한 가사를 포크락에 담아 이야기하여 인디밴드로서는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나는 평소에 음악을 듣지 않아. 하며 눈을 감고 귀를 닫아도 이러한 사건과 상황들이 과연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을까?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음악가의 음악은 우리가 들을만한 것일까? 그들의 문제점이 음악안에서도 노출되어 있는 것일까? 음반을 사서 들어야 한다면, 돈 없으면 음악을 즐길 수 없을까?

일전에 읽었던 노회찬의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노회찬은 어린시절 집이 유복한 편이어서 그 당시에도 첼로를 배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인터뷰의 말미에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 쯤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언급을 했다. 어떻게 보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도 우리 집은, 그리고 내가 어릴적 내 또래의 집에서는 '음악 테이프는 여유돈으로 사는 거다'라는 생각이 팽배해있었다. 음악은 그 방면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 특히 대중음악은 딴따라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경제 문제가 시급합니다' '먼저 파이를 키워야 해요' 와 같은 선성장 후분배(분배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의 논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우리와 밀착된 무언가를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팽개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며, 미래를 견인하는 예술적 상상력의 씨앗을 품자는 것으로 노회찬의 발언을 이해하였다.

'올랭피아'로 근대말의 부르주아를 까발린 에두아르 마네는 조금 과장하자면 프랑스의 현대를 여는 주역 중 하나였다. '아침이슬'이 아니라면 우리는 당시의 낭만적인 저항을 저질의 386의원들을 통해서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밥 딜런'과 '락앤롤'이 아니라면 우린 미국의 히피 역사를 오로지 대마초로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과거를 명예롭고 당당하게 기억하며,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 위하여, 예술은 필요하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을 통해 듣는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