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9 [제35호]

사회적 약자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참여 연구

공부도둑  


대전시민아카데미 손주영

공부도둑에도 급수가 있다면 나는 초짜 중 초짜, 이것도 도둑일까 의문을 느끼게 만들 저급의 도둑이다. 아직 완성된 자기 열쇠도 없이 이리 저리 열쇠를 가진 스승을 쫓아다니다 이제야 내 열쇠가 필요하다고 느낀 초짜 도둑, 아직 주도적으로 뭔가 훔쳐 본 적도 없이 궁리만 하는 도둑이다. 오랫동안 소 닭 보듯 했던 창고에 어마어마하게 빛나는 물건의 가치를 깨달은 도둑이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감히 미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좀도둑이 아니라면 점찍은 물건이 가진 교환가치보다 좀 더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출판일 :  2008-04-09
출판사 : 생각의나무
도서분류 : 사회과학문학순수과학
지은이 : 장회익

 

 

 

<공부도둑>은 공부도둑계의 대부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기본적인 골자는 에세이를 빙자한 저자의 ‘공부 인생 70년’ 자서전에 가깝다. 성공담이라고 해도 좋다. 저자가 어떻게 학문 창고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는지 선대를 걸쳐 집안 내력과 특수한 환경을 얘기해 나간다. 또 그렇게 학문 창고에 눈독을 들이며 어떻게 물리학이라는 마스터키를 장만하게 되었는지, 그 마스터키를 통해 어떻게 공략하는 학문 창고 종류를 늘리게 되었는지 얘기한다.

그 자신이 평생 학문에 매달린 학자인 덕에 그가 매달린 학문의 궤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 장회익의 인생을 훑게 된다. 일생 동안 그가 품은 의문과 이를 푸는 일관된 방향을 (선대에 걸쳐 자신의 이야기로 내려오듯) 연대기적으로 풀어간다. 이 구성은 ‘온생명’이라는 그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전체를 관통하며 작은 에피소드들로 그 안의 생명력을 풀어 놓는다. 이것은 다시 자연스럽게 현재 그가 몸담은 현대과학, 물리학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이는 곧 그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인류, 생명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배우는 사람 장회익은 자신의 배움의 비결을 줄곧 ‘야생의 경험’에서 찾는다. 평생 공부에 대한 적대감을 안고 살아 온 할아버지 덕분에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던 1년간이 그에겐 공부 밑천이 된 것이다. 그 밑천은 바로 스스로 하는 공부 습관이다. 또 자신이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주는 데로 받아먹는 학습이 아닌 자신에게 주입되는 학습의 진의를 검토하는 능력으로 발전한다. 스스로 학습의 수혜자가 아닌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그의 뛰어난 학습에 대한 능력, 서울대 졸업생이라는 학력, 서울대 교수라는 사회적 위치를 볼 때 잘난 사람의 성공담으로 읽힐 지도 모른다. 산으로 간다고 도라지가 산삼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처음에는 ‘이건 웬 조선시대 얘기야?’ 반감을 일게 했으나 책을 덮은 후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저자와 용 할아버지(저자의 선조)의 가상대화를 차용해 장회익 선생님과의 나의 대화를 시도해봤다.(곧 앞으로의 얘기는 순전히 나의 상상이라는 것, 생각하기에 따라 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종류의 대화이다.)

 

나 :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 네 안녕하세요.

(소개 중략)

나 : 뜬금없는 얘기지만 모든 사람이 산삼이 될 순 없지 않나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종자들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선생님 : 네. 모든 사람이 산에서 피어난다고 산삼이 되진 않죠. 도라지가 되기도 하고 쑥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라지는 도라지의 의미와 역할을 가집니다. 산삼과 도라지, 쑥 중 언제나 산삼이 가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제 성격과 특성을 간과하고 모두 인삼으로 키우려는 현실이 문제지요.

나 : 사실 저도 인삼으로 키워져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학생들은 인삼으로 키워져 잘 되면 인삼즙 상품세트로 인생을 만족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학생 개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선생님의 경우를 일반적으로 생각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개인의 문제보다는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 : 그렇지요. 스스로 커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적절한 모델을 제시해 주는 것이 공교육의 역할인데 지금의 교육이 그러지 못한 것은 참 아쉽습니다. 학생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오히려 뺏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 : 중학교 때까지는 과학을 참 좋아했어요. 특히 생물을 좋아했는데 만약 물리와 수학이 해결이 되었다면 이과에 갔을 거예요. 한번 어렵다고 느끼고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나중엔 그게 강박관념이 되는지 점점 더 겁이 나더라고요. 도대체 이걸 왜 배우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도 모르겠고. 아마 많은 문과 학생들은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웃음) 물리와 수학에 노이로제가 있는 것이 말이죠.

선생님 : 물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보면 참 안타워요. 사실 물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물질을 다루는 학문인데 그만큼 사는 것과 동떨어지지 않은 밀접한 학문이니까요. 조금만 안다면 멋진 학문이라고 느낄 텐데. 그런 호기심들을 자극해주는 게 필요할 텐데 말이죠.

나 :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수업을 받은 입장에서요. 제가 수학과 물리, 두 고비를 넘겼으면 위대한 생물학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웃음)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 과학을 혐오하게 되는 과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동시에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아버지의 책읽기 습관이 떠오른다. 책을 한번 읽으면 몰입하는 저자와 그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의 책 습관은 항상 ‘제일 흥미로운 부분에서 책을 덮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야 그 습관이 이해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재미있다고 무리해서 책을 읽으면 은연중에 몸이 힘들어 나중에는 책을 읽기 싫어지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고. 반면 재미있는 부분에서 멈추면 다음에도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 책 읽기를 항상 즐길 수 있다는 거다. 대학입시를 비롯한 각종 시험으로 새벽까지 무리해서 책에 코를 박는 젊은 세대들이 책이라면 이를 가는 것도 이해가 된다며. 하물며 수학이니 물리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과학을 좋아했다가 혐오하게 된 나의 성장기도 이해가 된다.   

장회익은 스스로 공부도둑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그의 도둑질은 인간으로써 마땅한 일이다. 학문의 창고에서 황금을 훔쳤다고 한들 황금은 훔친 도둑의 전유물이 되지 않는다. 학문창고에는 여전히 황금이 그득하다. 황금을 훔치는 진짜 목적은 황금을 자신의 소유를 넘어 황금을 늘리는 일이기 때문에. 황금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인류 전체의 것이다. 왜냐? 인류는 지구가 40살, 불혹의 나이에서 창출한 지적 생명체니까. 개개의 지적 업적은 인류와 지구 전체의 것이다.

공부하는 삶. 그가 얘기하는 공부는 개인의 신체를 이롭게 하는 사적 영역으로써의 공부가 아니라 서로 깨우치는 공적인 공부이며 개인의 소유가 아닌 인류의 산물로써의 학문이다. 하지만 얘기와는 달리 우리의 학문은 그 그림자를 찾기도 힘들다. 학생들은 한 시까지 학교 책상만 보며,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식의 대학이 결정되며, 다시 대학에 따라 취업이 결정되는 사회. (또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책에 질려 여가 생활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쇼프로에 쏟으며 사고를 죽이는 사회) 이 단단한 구조 속에서 학문이란 기본적으로 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인류 전체를 생각하는 학문은 택도 없다. 현대를 이룩한 과학문명의 속성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학은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사회를, 인류를, 전 지구를 잊는다. 자본과 환상에 복무한다.

이를 보는 장회익은 답답하다. 그는 얘기한다. 용 할아버지의 입을 빌려서. “정말 명심해라. 사람만 홀로 사는 곳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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