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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오예원
Date : 2004-12-01 12:13 | Hit :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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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이미 반이나 지나 이제 20세기가 180일 남짓 남았다. 6개월이 지나면 우리는 21세기로 진입한다.
21세기를 앞두고 우리 나라의 사회 문화 각계에서는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며 21세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정부도 21세기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되돌아보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21세기에 대처할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신세계라는 용어가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독특한 가치관 인생관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양식에 그 초점을 맞추어보자. 그리고 우리의 정신세계 가운데 앞으로 바꾸어야 할 내용을 살펴보자.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준 가치관은 뭐니뭐니 해도 유교의 가르침이다. 유교적 가치관은 사람 사이의 예의범절 등을 중요하게 여겨 가정 친구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엄격하게 정해놓았다. 특히 유교는 가정에서 지켜야 할 덕목들을 크게 강조했는데, 효도, 가부장의 권한, 가계계승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이혼율이 증가하여 가정이 무너지는 것에 비하면 아직도 한국의 가정은 튼튼한데, 그것은 유교적 가치관이 우리 가정을 정신적으로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적 가치관이 우리에게 주는 폐단도 있다. 그것은 남아선호 사상과 분묘제도이다. 유교에서는 가계계승과 조상숭배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딸보다는 아들을 선호한다. 이러한 유교적 전통 때문에 10여 년 전부터 자녀 출생 성비가 한 쪽으로 크게 치우쳐 아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태어나고 있다. 곧 양수검사로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아내어 딸일 때에는 인공유산을 하는 것이다.
분묘제도의 문제점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태는 알려진 것보다 더욱 심각하다. 이미 서울 근교에는 더 이상 묘지를 쓸 자리가 없다. 그래서 고령의 부모를 모신 자녀들은 묘지를 마련하려고 전전긍긍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최근 일부 사회지도층 가운데는 자신이 죽은 다음 화장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극히 일부의 혁신적 지도층에서 호응할 뿐 대중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조상숭배라는 덕목이 그들의 머리 속에 굳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가계계승도 문제삼아야 할 가치관이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은 너무나 크다. 이 가치관은 앞에서 말한 남아선호 사상은 물론 자녀에 대한 유산상속을 심화시켰다. 외국사람들은 자식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려고 애쓰지 않는다. 미국의 대재벌 회장은 유산을 사회에 기증하거나 재단을 설립해서 여러 가지 사회 봉사활동, 연구활동을 돕는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재벌이든 민초든 간에 열심히 벌어서 이를 자식에게 상속하지 못해 안달이다. 자식에게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것은 그 자식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유태인의 자녀교육 방침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교훈이 있다. ‘자녀에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지 고기를 대신 잡아주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우리 나라 부모들은 고기를 대신 잡아주고 있다. 호화판으로 결혼을 시켜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집을 사주고 지참금까지 마련해 준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할까? 하나는 가계계승의 가치관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를 지속적으로 지배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우리 나라 부모는 자녀를 아끼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 자식이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해서 지배하려 한다. 곧, 자녀가 결혼했어도 계속해서 부모를 찾아보고 공경해 주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하려면 자녀를 돈으로 묶어두는 수밖에 없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효도란 자녀가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강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효라는 덕목 하에 자녀에게 어떤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부모가 자녀의 대학입학 전공을 정하고 배우자를 직접 골라주는 식으로 자녀를 복종시키는 것과 자녀가 이러한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 효도는 아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되 자녀를 자신의 예속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을 가진 자율적인 존재로 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 부모는 자녀가 어른이 되어도 아직도 품안의 자식 키우듯 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학교 기숙사에 들어간다. 학교가 집 가까이 있어도 이런 식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독립심을 갖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의 품을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대학에 입학한 미국의 신입생들은 자기가 전공해야 할 학과, 그리고 일생을 같이할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은 청소년들이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은 얼마 동안 불안하고 힘은 들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의 둥지를 떠나는 용감한 시도를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청소년 스스로 독립할 의지가 부족하고 또 부모는 자식을 계속해서 지배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요소가 상승작용을 하여 전근대적인 부모 자녀 관계가 지속된다.
유교사회가 갖는 또 다른 특징은 집단주의이다. 서구와 미국은 개인주의적이라 개인의 자율성 독립성 독특성이 인정되는 데 비해 우리 나라나 일본 중국 같은 동양사회에서는 개인보다 집단이 더 우선시되고 상하관계가 엄격하며 집단에 대한 복종이 강요된다.
개인의 창의력 솔선성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싹트기 어렵다. 그리고 집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튀는 행동은 따돌림당하기 쉽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려면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들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는 우리의 집단주의적 유교 가치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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