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제주 4,3 학살 57주년...잠들지 않는 남도.
|
|
|
작성자 :
오예원
Date : 2005-04-03 01:47 | Hit : 2,247
|
잠들지 않는 남도
안치환노래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 살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햇살에 꽃잎시들었어도
살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진하리
아.....반역의 세월이여 아.....통곡의 세월이여
아.........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제주 4,3학살 비극의 상징 무명천 할머니
경찰의 발포로 턱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생존, 한 평생 무명천을 얼굴에 감고 살다 가셨다.
냉전희생의 섬 제주도
1948년 한반도의 남쪽 섬 제주도에는 광란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다. 희생자 숫자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3만 명 안팎'이란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당시 섬주민을 27만 명으로 봤을 때 전체 인구 9명 중 1명이 희생된 것이다. 제주도 주민들은 미군정이 실시한 남한 단독선거를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영구히 분단시키는 선거'라고 주장하며 반대하고 나섰다가 참혹한 희생을 치른 것이다.
희생자 숫자도 엄청나지만 이 수치만을 보고 피해 정도를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 수치로 집계될 수 없는 것들, 가령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간직한 채 숨을 죽이고 살아가고 있는 4·3피해자와 유족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이를 방관해온 이 나라, 이 사회의 부도덕한 윤리성에 더 큰 문제가 있다.
'4·3'은 단순히 제주도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는 대사건이다. 한국전쟁이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다면, 그 버금가는 참극이 바로, 제주4·3이다. 미군정 시절인 1948년의 제주도는 전쟁 지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권력에 의해 전쟁 상황을 뛰어넘는 학살극이 자행했다. 사망자 가운데 '90퍼센트 가까이'가 군인과 경찰 등 토벌대의 총칼에 희생됐다.
전쟁 중에도 군법이 있다. 적군과의 교전 중이더라도 상대방이 전투를 계속할 능력이 없을 때는 함부로 살해해서는 안된다. 포로에 대해서도 보호하는 국제규약이 있다. 이것이 문명사회의 기본 철칙이다. 그러나 1948년 제주도에서는 이 기본 철칙이 완전히 상실됐다. 법을 지켜야 할 공군력이 무수히 법을 어겼다. 인륜마저 저버렸다. 무차별 학살로 갓난아기부터 허리가 꼬부라진 노인들까지 처참하게 희생됐다.
해변마을인 조천면 북촌리는 이틀새 군인들에 의해 주민 4백여 명이 희생됐다. 사건은 1949년 1월 17일 일어났다. 이날 일부 병력이 이동 중에 북촌마을 근처에서 게릴라들의 기습을 받아 군인 두 명이 숨졌다. 이에 흥분한 군인들은 게릴라와 내통했다면서 마을의 모든 가옥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군인들은 주민 몇십 명씩을 한 묶음으로 끌고 나가 인근 밭에서 집단사살했다. 그 속에는 젖먹이들도 있었다. 이때부터 자행된 학살극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돼 남녀노소 약 3백 명이 숨졌고, 다음날 또다시 1백 명이 학살됐다.
미군이 베트남전쟁 때 한 마을을 덮쳐 주민을 학살했던 '미라이 학살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사건으로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다. 이런 유형의 양민 집단학살은 제주도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바깥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1948년 12월 14일 밤 표선면 토산리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18세부터 40세까지의 남자를 연행한 뒤 죄의 유무도 묻지 않고 모조리 총살했다. 또 얼굴이 고운 젊은 여자들만 따로 불러내 성폭행한 뒤 역시 학살했다. 그때 희생된 사람이 157명에 이른다.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왜 그들이 그처럼 허망하게 죽게 됐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주민들은 몇 년 전부터 사망 이유라도 알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주는 기관은 아무도 없다.
토벌대는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며 그 부모, 형제를 대신 학살했다. 당시 이를 '대살'이라고 불렀다. 1948년 12월 22일 토벌대는 표면선 가시리 주민들을 집결시킨 후 호적을 일일이 대조한 뒤 가족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입산한 게 분명하다'며 부모와 형제 76명을 총살했다.
실제의 피해보다 훨씬 축소된 제주도의회 신고자료에 의하더라도 마을별 사망자 숫자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봉개리 591명, 아라리 569명, 노형리 560명, 가시리 511명, 북촌리 479명, 삼양리 453명……이런 마을별 사망자 숫자는 끝이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수만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이 참극이 반세기 가까이 금기시되어왔다. 과거 정권들은 4·3의 학살 행위에 대해서는 한마디 사과나 언급도 없이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문제로만 덧칠하는 데 급급했다. 즉 "4·3은 공산폭동이니 논의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말해서는 안된다"는 논리 전개가 그것이다. 더욱이 국가권력이 개입해서 사건의 진상을 조작하는 작업까지 한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냉전시대의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인 제주4·3은 50년 동안 한국 국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없었던 역사'로 덮어져왔던 것이다.
4ㆍ3의 역사적 배경
제주4·3은 한마디로 미군정 아래에서 한민족이 안고 있는 집약적 모순이 빚어낸 역사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제대로 보려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으로 분할되는 냉전 상황과 한반도를 38선 남북으로 갈라놓은 미국의 실책, 그리고 제주도의 저항역사와 당시의 독특했던 정치·경제·사회적 여건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4·3의 도화선은 1947년 3월 1일 제주읍내에서 3·1절 시위 군중에게 응원경찰이 발포, 6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군정당국은 좌익계의 선동에 의해 시위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려 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잉 반응에 의한 무차별 발사라는 것이 일반 대중의 인식이었다. 6명의 사망자 신원이 초등학생,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 장년의 농부 등 대부분 관람 군중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주도민들을 격분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4·3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는 뜻에서 해방정국의 제주 상황을 살펴보겠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일제는 제2차세계대전 말기에 미군에 의해 오키나와까지 점령당하게 되자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대미결전의 최후 보루'로 삼고 관동군을 비롯한 일본 정예군 7만 명을 이동 배치했다. 저들의 작전계획에 의하면 미군이 제주에 상륙하게 되면 7만 대군이 최후까지 한라산을 중심으로 유격전을 벌이며 옥쇄 한다는 것이었다. 또 당시 20만 명의 제주도민을 산중으로 끌고 가 최후 결전의 소모품으로 사용하겠다는 어마어마한 계획도 있었다.
당시 일본군 정보팀의 분석 자료는 미군의 제주 상륙 시기는 9∼10월, 상륙 병력은 2∼5개 사단으로 예측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 달만 더 끌었어도 제주섬은 강대국의 전쟁터로, 그야말로 불바다로 변할 뻔했다. 그런 위기 속에서 해방이 되었기에 제주도민의 감회는 본토민들과는 남다른 것이었다.
해방이 되자 제주도에는 귀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일제는 조선전체에서 저급한 노동 인력을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노동력시장'으로 제주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1920년대부터 제주-오사카 간 직항로를 개설, 군대환 등 여러 척의 정기여객선을 운항시켰다. 전쟁기간에도 제주의 젊은이들이 공장 노동자나 전쟁 노무자로 일본에 보내졌다. 그들이 1945∼46년 사이에 귀환한 것인데 그 숫자는 자그마치 6만 명에 이르렀다. 인구변동률 25퍼센트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제 더 이상의 농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노동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에 거주하면서 저임금과 민족 차별에 고통을 받았던 자들로서 일정하게 민족의식과 사회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 가족 가운데는 일본에서 대학교육 등 고등교육을 받았던 자들도 많았다.
그들이 고향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가장 먼저 한 일은 건국 준비를 위한 자치활동과 마을마다 세우는 교육활동이었다. 자치활동은 건국준비위원회에 이은 인민위원회 활동으로 표출됐다. 당시 제주도인민위원회는 막강했다. 그것은 미군정 관리나 미국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제주도인민위원회의 특징은 다음 여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지역주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자치기구였다는 점, (2)항일 경험자들이 주도했다는 점, (3)온건했다는 점, (4)존속 기간이 전국적으로 가장 길었다는 점, (5)현지 미군정 중대와의 협력관계를 유지했다는 점, (6)중앙이나 전남위원회 조직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 독자적이었다는 점 등이다.
당시 뜨거웠던 제주도 교육 열기는 "1945년 8월부터 1947년 12월 사이에 중등학교 10개소, 초등학교 44개소가 설립되었다는 표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 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1947년 2월 시점에서 전국 각 도에서 뽑은 15개 군을 비교 대상으로 15세 이상의 남자를 대상으로 초등학교 이상의 졸업생 비율을 분석한 결과 북제주군이 35.7퍼센트로 교육 수준 1위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군정당국에 대한 불만도 서서히 확산됐다. 6만 명에 이르는 귀환 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에 의한 3백여 명의 희생, 대 흉년과 미곡 정책의 실패 등 악재가 겹쳤다. 특히 일제 경찰의 군정경찰로의 변신,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군정 관리들의 모리행위(1947년 2월 이 문제로 감찰정장이 해임된 사건도 있었음) 등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터진 '3·1절 발포사건'은 제주도민들을 흥분케 한 것이다. 그러나 군정당국은 이 경솔한 발포사건을 정당방위로 주장, 민심 수습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열흘 뒤인 3월 10일부터 제주에서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민관합동 대규모 총파업이 전개됐다. 이 파업은 발포 경관의 처벌, 경찰 수뇌부의 인책 사임, 희생자 유족 보상 등을 요구했다. 파업에는 도청을 비롯한 도내 156개 관공서 국영기업 단체들이 참여했다. 도내 전체 초·중등학교가 항의 휴교를 했고 상점들도 이에 동참해 문을 닫았다. 제주 출신 경찰관 66명이 파업에 동참했다가 파면 당한 일도 있었다. 당시 지방신문은 발포 정당화에 항의하는 희생자 조의금 모금운동을 전개, 제주도민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어냈다. 동요하는 민심의 흐름을 틈타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와 인민위원회는 조직적인 반경활동을 전개하였다. 미군 정보팀이 "총파업에는 경찰 발포사건에 항의, 좌·우익 공히 참가하고 있다"고 보고할 정도로 범도민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미군정도 이를 중시, 서울사령부의 카스티어 대령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을 제주에 파견했다. 미군 조사단은 제주 총파업의 원인을 3·1절의 경찰 발포로 인하여 도민의 감정이 고조됐고 이런 도민 감정을 남로당에서 선동, 증폭시켰다는 두 가지로 요약했다. 그러면서도 사태 해결의 후속조치로는 '경찰의 무차별 발포행위'보다는 '남로당의 선동' 부분에 비중을 두어 강공정책을 추진해갔다.
미군 조사단이 제주를 떠난 다음날부터 조병옥 경무부장과 응원경찰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주에 내려왔다. 또한 타도 수사요원들을 중심으로 한 특별수사대도 설치되었다. 이 무렵 경무부 수뇌부에 의해서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는 발언들이 공공연히 중앙 언론에 보도되었다.
3월 15일부터 파업 주모자에 대한 검거령이 내려졌다. 미군정은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3월에만 본토에서 응원경찰 421명과 서북청년단원들이 대거 들어왔다. 도지사가 극우파인 외지 사람으로 교체됐다. 제주 출신 경찰관들도 뒷전으로 밀렸다. 본토에서 파견된 응원경찰과 서청단원들은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조금이라도 불평하는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연행, 투옥, 고문했다. 심지어 억지로 죄인을 만들어 금품을 갈취하는 백색테러가 잇따랐다.
검속 한 달 만에 5백여 명이 체포됐다. 이런 긴장 상황은 계속되었다. 4·3발발 직전까지 1년간 2천5백 명이 구금되었다. 특히 1948년 3월에 들어서면서 조천지서와 모슬포지서 등지에서 잇따라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 사회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뭔가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 터질 것 같은 팽창된 위기 사회로 변하고 말았다.
과거 탐라국이란 독립국가의 역사 경험이 있는 제주도민들에게는 중앙정부에 대한 유다른 저항의 기질이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억압에 대해 참고 참다가 더 이상 못 견딜 때는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는 사건들이 있었다. 조선 말기에는 이재수의 난을 비롯하여 도합 여섯 차례의 농민봉기가 잇따라 발생했다. 거기에는 제주도 내부의 계급적·집단적 갈등의 표출이라기보다는 탐관오리의 착취나 중앙정부의 억압에 대한 도민적인 저항의 성격이 있었다.
일제하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저항주의적 전통은 그대로 이어졌다. 1908년 의병투쟁을 시작으로 3·1 만세운동, '반역자 구락부' 결성, 사회주의 해방운동단체인 '신인회' 결성, 제주농업학교 항쟁사건, 제주청맹사건, 그리고 '혁우동맹'과 제주도 야체이카(비밀결사) 결성을 거쳐 1932년 그 유명한 해녀항쟁이 일어난다.
1948년에 이르러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 개입한 가운데 통일국가로 가느냐, 분단국가로 가느냐는 문제를 놓고 여론이 들끓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정은 남한만의 단독선거인 '5·10선거' 강행을 결정했다. 이 문제로 전국의 정치 상황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갔다. 좌파 조직만이 아니라 김구, 김규식 등 우파 및 중도파 지도자들도 단독선거 반대 대열에 나섰다.
미군정으로부터 탄압을 받던 제주도민 사회는 저항의 심지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당시 분단을 반대하는 민족적 염원에 부응하는 분위기도 우세했다. 특히 미군정으로부터 철저한 탄압 대상이 됐던 좌파계열의 남로당 제주도 조직인 이 반대운동에 앞장서서 주민들을 선동했다. 그리고 이 조직은 군정당국에 등 돌린 민심을 이용, 1948년 4월 3일 새벽 탄압에 저항하고, 통일국가 건립을 가로막는 5·10 단선을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반문명적 범죄인 초토화작전
1948년 4월 3일 새벽 1시 5백 명 안팎의 소위 무장자위대가 11개지서와 서청, 대청 등 우익단체의 요인 집을 습격하면서 무장봉기의 신호탄이 올랐다.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무장대는 단선·단정 저지를 통한 통일국가 수립, 그리고 경찰과 서청의 추방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다. 미군정은 사태 초기에 이 사건을 '치안 상황'으로 간주, 4월 5일 제주비상경비사령부(사령관 김정호 경무부 공안국장)를 설치하는 한편, 본토 경찰 1천7백 명의 제주 파병을 승인하였다. 또한 서청단원 5백 명을 증파했다. 그런데 응원경찰 등에 의한 토벌작전은 오히려 민심을 자극, 많은 도민들을 산 속으로 피신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미군정은 4월 17일, 그동안 관망 상태에 있던 모슬포 주둔 경비대 제9연대에도 진압작전에 참여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9연대는 이 사건을 제주도민들과 경찰 및 서청 같은 극우 청년단체 간의 충돌로 여겨 '선선무 후토벌' 원칙을 세우고 무장대와의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이 결과 4월 28일 9연대장 김익렬 중령과 연대정보참모 이윤락 중위, 그리고 무장대측 군사총책 김달삼 등이 회동, 72시간 안의 전투 중지, 무장 해제와 하산이 이뤄지면 주모자들의 신변 보장 등 세 가지 조건에 합의하는 평화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이 협상 직후인 5월 1일 우익청년단의 소행에 의한 '오라리 방화사건'의 조작극과 '5·3 기습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 평화협상의 진로에 찬물을 끼얹었다. 5월 5일 군정장관 딘 소장은 제주에서 최고수뇌회의를 주재하고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건의하다 조병옥 경무부장과 충돌한 김익렬 연대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로써 게릴라칙과의 평화협상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5월 6일 김 중령 후임 연대장으로 박진경 중령이 부임했으며 수원에서 창설된 11연대가 제주에 추가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5월 10일 전국 2백 개 선거구에서 일제히 실시된 총선거 결과 제주도 애 3개 선거구 중 북제주 갑·을구 등 2개 선거구가 과반수 미달의 보이콧으로 선거가 무효 처리되었다. 결과적으로 제주도는 남한지역 내의 유일한 5·10 단선 거부 지역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아울러 이 단독선거를 추진해온 미군정에게는 미국의 동북아정책을 거부한 제주도가 눈엣가시처럼 매우 거북한 지역이 되고 말았다.
5·10 선거가 저지된 직후 군 병력과 함께 응원경찰대도 크게 증강되었다. 미군정은 증강된 병력을 총괄 지휘하기 위해 5월 중순께 제주지구 미군사령관으로 브라운 대령(미군 20연대장)을 파견, 제주 현지작전의 최고 지휘관으로 경비대, 해안경비대, 경찰과 미군을 통솔하도록 했다. 브라운 대령은 원인 치유책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진압 일변도로 몰고 갔다. 그는 어떻게 하든지 사태를 진압해서 재선거를 실시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신임 박진경 연대장도 그동안의 경비대의 온건 전략에서 탈피, 대대적인 토벌 위주의 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 진압작전으로 부작용도 속출했다. 당시 군정당국이 발표한 '포로가 된 폭도'의 숫자만 봐도 그렇다. 1948년 5월 27이 유동열 통위부장이 발표한 '포로'는 3,126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 포로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6월 10일께에는 6천 명에 이르렀다. '폭도 아닌 폭도'를 잡아들인 것이다.
5월 21일에는 박 연대장의 토벌정책에 반기를 든 41명의 경비대원들이 모슬포 연대 본부에서 자신들의 무기와 장비 탄약 5천6백 발을 갖고 탈영, 산 쪽에 가담함으로써 재산무장대의 무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딘 장국은 박 연대장의 강경 토벌작전을 높이 평가, 6월 초 제주에 직접 내려와 대령 진급 계급장을 달아줬다. 그런데 6월 18일 딘 장군의 신임을 받던 박진경 대령이 그의 숙소에서 부하에 의해 암살당한 사건이 발생, 충격파를 던졌다.
이후 제주사태는 한때 소강 국면을 맞았다. 무장대는 8·25 지하선거 준비, 지도부의 해주 대회 참가 등으로 조직 재편의 과정을 겪었다. 토벌 수뇌부도 정부 수립과정을 거치면서 느슨한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소강 상태도 잠시뿐이었다.
1948년 10월에 들어서면서 토벌의 강도가 다시 강화됐다. 남과 북에 서로 적대적인 정부가 출현함에 따라 제주도 사태는 단순한 지역 문제를 넘어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강한 도전으로 부각되었다. 남한 정권을 장악한 이승만 정부는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대거 제주에 파견했다. 그런데 10월 19일 제주에 파병하려던 대대가 여수에서 총부리를 돌려 이른바 '여순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전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군 당국은 10월 20일부터 해군 함정 7척을 동원, 제주와 육지와의 뱃길을 차단했다. 또 제주도 포구의 모든 어선에 대해 '출어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하여 제주도는 상당 기간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었다. 여수 14연대 반란사건은 군 내부적으로는 대대적인 숙군 선풍을, 제주사태에 대해서는 참혹한 양민학살의 유혈극을 몰고 왔다.
신임 송요찬 연대장은 10월 17일 해안선으로부터 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인정,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제주도의 지형상 '해안선에서 5킬로미터 이외의 지점'은 특정한 산악지역이 아니다. 해안 마을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산간 마을들이 이에 해당된다. 중산간에서는 들판이든 마을 안이든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발포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작전이 수립된 것이었다.
이 작전에 앞서 제주읍내 지역 유지들에 대한 일제 검속이 실시되었다. 제주농업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천막수용소에 안 다녀온 유지가 드물 정도로 제주읍내는 일순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법원장이 연행되었고, 현직 검사를 비롯한 법조계 인사들마저 끌려간 뒤 즉결처분되었다. 제주중학교 교장, 『제주신보』편집국장 등이 총살됐고, 제주도정의 2인자인 총무국장이 서청단원에 의해 고문치사되었다. 심지어 토벌대는 당시 유일한 지역언론사인 『제주신보』를 접수, 서청단장을 신문사 사장으로 앉혔다. 11월 초순께는 9연대 장병 1백여 명이 군사재판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처형됐다. 희생된 군인들은 주로 제주 출신이었다. 토벌대는 초토화작전을 집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부분은 철저히 제거했다.
설촌 7백 년의 유서가 깊은 중산간 마을 조천면 교래리는 1948년 11월 13일 새벽에 초토화되어 하룻밤새 모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이 마을에 들어온 군인들은 무차별 학살극을 자행했다. 시신들 대부분은 총에 맞은 채 불에 탔고, 열네 살 난 한 소녀의 시신에는 대검이 꽂혀 있었다. 그날 양복천 할머니는 어린 딸과 함께 총상을 입었고, 아홉 살 난 아들(김문용)을 잃었다. 양할머니는 그날의 참상을 이렇게 증언했다.
새벽에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자 젊은이들은 황급히 피했습니다. 난 어린 아들과 딸 때문에 그냥 집에 있었습니다. '설마 아녀자와 어린아이까지 죽이겠느냐'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집에 불을 붙이는 군인들 태도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무조건 "살려줍서, 살려줍서"하며 빌었습니다. 그 순간 총알이 내 옆구리를 뚫었습니다. 세 살 난 딸을 업은 채 픽 쓰러지자 아홉 살 난 아들이 겁을 집어먹고 "어머니!"하며 내 품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아들을 향해 또 한 발을 쏘았습니다. 아들은 가슴에 총을 맞아 심장이 다 나왔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집은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가버리자 나는 우선 총 맞은 아들이 불에 타지 않도록 마당으로 끌어낸 후 딸을 살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딸이 울지 않았기 때문에 딸까지 총에 맞았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지요. 그런데 등에서 아기를 내리려는데 담요가 너덜너덜 합디다. 내 옆구리를 관통한 총알이 담요를 뚫고 딸의 왼쪽 무릎을 부숴놓은 겁니다. 두 번째 생일날 불구자가 된 딸이 벌써 쉰세 살입니다.
가장 참혹한 희생은 1948년 11월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집중되었다. 토벌군은 게릴라들의 피난처와 물자 공급원을 제거한다는 구실로 1백여 곳의 중산간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또 80년대 노인에서부터 젖먹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이 작전이 전개되는 기간에 최소 1만 5천 명에서 2만 명에 이르는 인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애는 이른바 삼진작전은 한라산 기슭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예로부터 지켜오던 중산간 마을을 파괴하였다. 소개령 등에 의해 참화를 입은 가옥이 35,500채, 피해가축 46,000필에 이른다는 기록은 무엇을 말함인가?
왜 50년동안 알려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역대 정권은 이런 엄청난 사건을 50년 가까이 금기시해왔다. "4·3은 공산폭동이니 말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말문을 막아온 것이다. 4·3에 대한 역사의 왜곡은 군과 경찰측이 앞장서서 주도해왔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4·3 논의를 통제해오면서 자신들이 작성한 자료만 이 세상에 남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4·3 역사를 기록한 군경자료는 의도적인 왜곡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흑백논리는 거리낌없이 엄청난 문제로 확대 재생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즉 '공산폭동이기 때문에 북한이 사주한 것'이라는 비약된 등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폭거적인 규정은 유족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불안과 공포심리를 심어줬다. 많은 유족들은 무슨 연유로 자신의 부모들이 숨졌는지, 그리고 그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내놓고 알려고 안한다. 많은 유족과 체험자들은 아직도 피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말하기를 꺼려 한다. 그들은 여전히 '말없는 다수'일 뿐이다. 그들의 정신적·육체적 상처는 정작 속으로만 곪아가고 있을 뿐이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은 이 숨막히게 하는 '공산폭동'의 발설 근원을 추적해봤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조작된 근거들을 찾아냈다. 여기서는 몇 가지 사례만 소개하겠다.
첫째, 4·3발발 직후 "외부 공산주의자들의 개입으로 사태가 발생했다"고 발언을 처음 시작한 쪽은 무장대측의 주 공격대상이 됐던 군정경찰이었다. 본토에서 파견됐던 응원경찰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덮고 토벌 명분을 찾기 위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중앙 연계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추상적인 예단과 추리는 앞세우고 있을 뿐 그 어느 곳에서도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둘째, 공산폭동론에 두 번째로 동조한 세력은 미군정이었다. 미군정은 4·3을 공산반란으로 몰고 갔다. 딘 군정장관도 1948년 5월 5일 제주시찰 직후 "제주도 외에서 온 공산분자들이 일부 청년을 오도하여 산에 가서 폭동을 일으켜 관리와 선거를 지지하는 자들을 위협 살해하고 있다"며 외지인들의 선동에 의해 폭동이 일어난 것 같은 발언을 했다. 그런데 4·3발발 당시 제주 주둔 9연대장 김익렬 장군은 미군정의 공산반란론은 전략적인 이유로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회고록을 통해 "미국 본토로부터 제주도사태 발생에 대한 문책을 받은 미군정은 국제여론을 무마하고 사태를 조속히 진압하기 위해 전략상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반란'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제의를 당시 제주 주둔 경비대 책임자인 자신에게 직접 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셋째, 1970년대 들어 개인의 저술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폭동지령에 의해 4·3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박갑동이었다. 한때 남로당 지하총책을 지냈다는 그의 경력 때문에 이 주장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졌다. 보수계열의 연구자들은 이 대목을 인용, 중앙지령설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4·3취재반의 검토 결과 그의 글에서 여러 곳의 오류를 발견했다. 도쿄에 사는 박갑동에게 서신을 띄웠지만 회답이 없었다. 취재반의 한 기자가 직접 도쿄로 날아갔다. 비로소 말문을 연 박갑동은 "중앙지령설은 내 글이 아니고 정보부에서 고쳐 쓴 글"이라고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했다.
넷째, 교과서의 표기도 문제이다. 몇 해 전까지도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4·3을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교란작전의 하나'로 기술하고 있다. 교과서 필진들과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4·3의 내용을 전혀 모른 채 기존자료를 그냥 인용했다고 실토했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이 교과서의 왜곡 문제를 계속 제기하자 국사편찬위원회는 1996년부터 교과서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 부간과의 연계 표현은 삭제됐다. 그리고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는 부분이 추가됐다. 그러나 교과서의 4·3관련 기술은 아직도 미흡하며 전면 보완이 필요하다.
최근 4·3에 대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4·3발발 과정에서의 남로당 중앙지령설은 부인되고 있다. 제주도당의 독자감행설이 유력하다. 이와 같은 견해에는 미국학자 존 메릴 박사나 브루스 커밍스 박사 등도 동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토벌대측이나 관변자료에서는 계속 중앙지령설을 유포, 혼선을 빚게 해온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공권력의 불법 집행으로 빚어진 참혹한 학살 실상을 덮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썼을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군경 자료는 비단 공산폭동 문제만이 아니라 1차 기초자료로서도 활용하기 힘들 정도로 부실한 내용이 많다. 계엄령을 집행했던 군의자료에 계엄령 선포 날짜가 틀리게 기록되는 등 기초적인 날짜나 인명 하나조차 믿기 어렵다. 심지어 경찰자료에는 서두에 언급한 '북촌리 사건', 즉 군인들에 의해 이틀새 4백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처참하게 총살된 사건을 '공비'들이 자행한 것처럼 버젓이 그 가해자를 완전히 뒤바꿔놓는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무엇이 논리의 핵심인가
ㄱ. 발발 원인
4.3의 발발 원인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존 메릴의 논문 「제주도의 반란」은 "전후 점령군에 대하여 제주도에서와 같은 격렬한 대중적 저항이 분출된 일은 지구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는 표현으로 그 특수성을 함축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 살핀 역사적인 배경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관변자료들은 4.3의 원인을 '공산계열의 사주에 의한 폭동' 으로 규정, 더 이상 논의를 제한해왔다. 그러면 단지 남로당의 선동에 의해서 '격렬한 대주적 저항이 분출했다'는 식인데, 이런 설명으로 납득할 수 있는 문제인가?
물론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개입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좌파세력의 개입범위와 무장봉기의 무모성 등에 대해서도 면밀한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미군정의 실정(失政), 관공리의 부패와 응원경찰의 가혹행위, 그리고 서청의 과오 등도 함께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한다. 특히 1947년 벌어진 '3.1절 발포사건'과 이에 항거한 '총파업사건'을 군정 당국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고 외지 물리력을 대거 유입, 탄압 일변도의 정책을 편 데 대해서도 비중 있게 살펴야 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다음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 군정당국은 응원경찰대의 무차별 발포로 빚어진 '3.1절 발포사건'이 과잉대응이란 증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났는데도 발포 책임자 문책이나 사과 등 민심수습책을 쓰기보다는 정당방위라고 강변을 하면서 민심수습을 외면한 점이다.
둘째, 경무부 수뇌부는 총파업 이후 제주도를 '붉은섬'으로 규정하는 발언 등을 통해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 단원들을 자극시켰는데, 그런 표현이 과연 검증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셋째, 4.3 이전에 이미 2천5백 명이 검속되는 등 유치장은 차고 넘쳤는데, 이런 검거선풍은 정당했는가 하는 점이다.
넷째, 1948년 3월 연달아 발생한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은 제주사회를 극도로 자극시켰는데, 이런 민심은 4.3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다섯째, 1947년까지도 좌도 좋고 우도 좋다는 식으로 끌고 간 미군정의 이념 혼선이 일반대중들에게 어떤 인식을 심어줬는지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4.3의 원인을 제대로 보려면 이런 민심의 흐름을 그 시대의 잣대로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이분법에 의한 도식적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4.3 발발 당시 제주도를 시찰했던 판사, 검사 등 법조계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좌익세력들의 개입 못지 않게 관공리의 부패와 경찰의 가혹행위, 서청의 만행 등을 함께 지적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죽 했으면 미군정 검찰총장 이인(李仁)마저 "시정방침에 신축성이 없었고 관공리들이 부패한 것이 제주도사태를 악화시켰다"면서 "고름이 제대로 든 것을 좌익 계열에서 바늘로 터트린 것이 제주도사태의 진상" 이라고 규정했겠는가.
아울러 "반쪽 조국은 안된다"고 단독선거를 반대했던 정치적인 슬로건도 이런 탄압구도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ㄴ. 불법 학살극
4.3의 인명 피해가 엄청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앞에서도 살폈듯이 제주도 의회에 신고된 피해자 가운데 83퍼센트가 토벌대에 의해, 11퍼센트가 무장대에 의해 발생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눈에 진압작전 수행이 과도하게 집행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토벌 대상'이 됐던 무장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초기의 군경 자료에 의하면 언급된 당시 무장대의 동원 규모를 보면 대체로 '주력 5백 명 미만, 동조 가담자 1천 명 안팎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미군이나 정부의 모든 발표에도 무장대의 숫자가 수백 명 단위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도 4.3의 진행과정에서 수만 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되었다. 군경 토벌대의 작전지시와 그 집행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난다.
진압군이 초토화작전을 감행하기 이전인 1948년 9월말까지 6개월 동안 인명피해는 1천 명 미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10월 이후 진압군에 의해 초토화작전이 전개되면서 제주 섬은 그야말로 '피로 물든 섬'이 되고 말았다. 인명 피해를 다소 축소한 인상을 주고 있는 미군 정 정보보고서에도 "1949년 3월 현재 사망자 숫자는 1만 5천 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혀 10월 이후 인명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토벌대는 해안선에서 5킬로미터 이외의 중간산 지대는 '적지'로 간주하라는 작전명령에 따라 1백 여 곳의 중간 마을을 불태웠다. 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을 학살하는 사례가 많았다. 또 해안마을에서도 가족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으로 낙인찍어 그 부모 형제를 대신 처형하는 '대살' 만행을 저질렀다.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된 것이다. 『제민일보』4.3취재반은 1997년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이 초토화 적전의 법적 토대가 됐던 한 문서를 찾아냈다. 그것은 1948년 11월 1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한 '제주도지구 계엄선포' 문서였다. 4.3체험자들에게 계엄령은 초법적인 조치로 각인 되어 있었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조차 "그때는 계엄령시절이라서......"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계엄령을 '마구 사람을 죽여도 되는 제도'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잔혹한' 계엄령이 이승만 대통령과 당시 국무위원들의 서명 아래 발동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계엄령은 분석 결과, 계엄법이 제정되기 1년 전에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선포된 것으로 밝혀져 '불법 계엄령'이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계의 이런 주장과는 달리 서울지법 서부지원은 1998년 7월 "4.3계엄령은 일응 법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고 판시, 앞으로 위헌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예상된다. 설사 계엄령이 적법이었다고 해도, 해서는 안되는 무소불위의 불법적인 즉결 학살을 정부군 차원에서 자행했다는 점에서 문제 해법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즉 이 계엄령은 제헌헌법의 법통을 이어받은 한국정부라면 그 어떤 정부든 4. 3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잔혹한 진압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란 국가권력의 적극적인 지시 아래 감행됐기 때문이다.
|
|
|
|
|
|
